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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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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1차 랜드 전쟁/배경]] 문서 참고.}}} 포르틸락해협은 랜드해협 북부의 내해와 중앙 해역을 잇는 유일한 수로다. 19세기 말 빌베른의 콘스탄티노폴 통치가 흔들리자 루이나·플로렌시아·체르드를 비롯한 아홉 개 나라가 도시에 조차지를 두었고, 해협의 항만과 수로는 사실상 조차국들이 관리했다. 1945년 콘스탄티노폴이 독립한 뒤에도 이 구조는 바뀌지 않았으며, 1956년 스타투드라 정권은 만료를 앞둔 조차 계약을 일괄 50년 연장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랜드해협의 세력 관계는 빠르게 바뀌었다. 1949년 수립된 사비에트는 [[소련]], [[청평]]과 손잡고 군사력을 키웠고, 1957년 12월에는 첫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같은 해 루이나는 하쿠센 조약으로 [[북산]]을 영향권에 넣었다. 1957년 9월 조차국 회의가 루이나와 플로렌시아의 주도로 비조차국 군함의 해협 통과를 사전 통보제로 묶고 전략물자를 검문할 수 있게 한 '''해협 항행 규칙'''을 채택하자, 사비에트가 체르드와 라 마베라로 보내던 무기 수송로가 막혔다. 체르드는 조차국 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졌으나 다수결에 밀렸고, 같은 해 12월 사비에트·체르드·라 마베라·고랜드는 '''4국 상호원조 조약'''을 맺었다. 1958년 1월 9일 웨스타시아가 [[유고랜드]]를 괴뢰국으로 만들면서 해협 남부에서도 긴장이 높아졌다. 사비에트와 고랜드 사이에 협상국 쪽 괴뢰국이 들어선 셈이었다. 두 달 뒤인 3월 9일 해협 항행 규칙에 따른 사전 통보 없이 포르틸락해협에 들어서려던 사비에트 수송 선단에 루이나 구축함이 정선을 요구하며 경고 사격을 하자, 해협 연안의 체르드 해안포대가 루이나 함정에 포격을 가했다. 루이나는 체르드에 48시간 기한의 최후통첩을 보냈고, 체르드가 이를 거부하자 3월 12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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